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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역사 1- 배재학당 내 신학반(1887)
    교회사랑/감리교신학대학교 2019. 1. 31. 18:58

    감리교신학대학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약칭 '감리교'의 직영 신학대 중 하나다. 그러나 장로교와 달리 감리교는 오랫동안 하나의 신학교 체제 하에 역사가 진행되어 왔기에 감리교신학대학교는 한국 감리교회의 대표 신학교이자 감리교의 신학교육 그 자체를 의미해 왔다.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개교 연도를 따지는 데에는 먼저, 감신이 세워진 목적과 감신이 오랫동안 한국 감리교회 내에서 차지한 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래 '개교'는 '학교'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문을 연 것을 의미한다. 이 기준으로 감신의 개교 연도를 따지면 1907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감신은 오랫동안 감리교 내에서 이루어진 신학교육 그 자체를 상징하는 학교였기에, 한국 땅에서 감리교 신학 교육이 이뤄진 해가 감신의 개교 연도가 되었다.


    미국 북감리회에서 한국에 파송된 첫번째 주재 선교사 중 한 명인 아펜젤러는 1888년 미 감리교회 해외 선교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of the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한국 땅에서 이뤄진 최초의 개신교 신학 교육이자, 감리교 신학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Our theological department, because of the absence of religious liberty, has not been formally opened. There are eight earnest students of the word who meet their teachers outside the regular school-hours.


    우리의 신학반은 이곳에 신앙의 자유가 없는 관계로 정식으로 열리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에 열의가 있는 8명의 학생이 있어 정규 수업 시간 외에 교사들을 따로 만나고 있습니다.

    이 보고에 따르면 1887년 배재학당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신학 교육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허가 받지 못했기에 이 모임을 비공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성경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이 방과 후에 선생들을 찾아가 신학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 어떠한 내용의 신학 교육이 이뤄졌는지, 그 대상은 누구였는지 확인할 길이 현재로서는 전무하지만, 아펜젤러가 보고서에 이와 같은 내용을 적은 것은 비공식적으로나마 이 땅에서 신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위 두 문장 사이에는 접속사가 없지만 문맥상 '다만',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자연스레 붙일 수 있다. 접속사를 포함하여 위 문장을 다시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신학반은 이곳에 신앙의 자유가 없는 관계로 정식으로 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열의가 있는 8명의 학생이 있어 정규 수업 시간 외에 교사들을 따로 만나고 있습니다.


    1887년의 이 모임은 '비공개 신학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당시 교육의 내용과 그 대상은 확인되지 않지만 아펜젤러는 이를 '신학반'이라고 명시한다. 성경 공부반(Bible Class)을 넘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신학 교육이 행해졌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이는 한국 땅에서 최초로 이뤄진 개신교 신학 교육이자, 최초로 이뤄진 감리교의 신학 교육이었다. 한국 감리교 신학의 상징인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9년 기준 132년이란 긴 시간을 달려온 감리교신학대학교는 배재학당 내 비공식 신학반으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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