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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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비판한국사랑/고구려사 2019. 1. 31. 19:11
0. 김광식 감독이 가로되 '안시성 관련 기록이 세 줄 밖에 없다' 하였는가? 삼국사기 한 권에만 최소 60줄 이상(A4 기준)이다.....감독의 무식함과 용감함에 박수를 보낸다. 아마 영화 만들면서 은연 중에 자신의 공부량이 세 줄 밖에 안 된다고 밝힌 것은 아닐지... 1. 첫 자막부터 '당나라 군 20만'이란 글이 나왔다. 종전의 통설은 사료를 비평없이 복붙하여 당군의 규모가 10만 대군(육 6만, 해 4만)이라고들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이는 선발대에 해당하는 규모일 뿐, 당군 전체의 숫자라 하기 어렵다. 휘하에 약 1만명 정도를 거느리는 총관의 수가 40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즉 육군만 해도 4~50만명인 것이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645년 당시 당나라 육군의 규모는 약 50만 명, 해군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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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상복과 시복의 변화 1한국사랑/조선사 2019. 1. 30. 23:15
조선의 관복은 용도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 종류로 나뉜다. 공복, 시복, 상복, 제복, 조복이 그것이다. 이 중 공복과 제복, 조복은 형태와 용도가 명확히 구분되어 혼동되기 쉽지 않지만, 시복과 상복은 용도와 형태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연구로 안동대 이은주 교수의 "조선시대 백관의 시복과 상복 제도 변천", 2005의 논문이 나와 있다. 먼저 시복(時服)과 상복(常服)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상복은 항상 상 자로 일상복을 의미한다. 시복은 때 시 자로 특정한 상황에 입는 옷이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조선 후기에는 두 개념이 서로 반전된다. 1. 조선 초기(용도 미분화) 일단 시복과 상복은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딱히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동일한 내용에 대해 실록은 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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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언어는 같았는가 달랐는가?한국사랑 2019. 1. 30. 00:03
삼국언어에 대해선 60년대 이기문, 김완진, 송민, 박병채 등의 연구로 각각 달랐다는 결론이 도출된 바 있었지만 80년대 김방한, 이병선, 김병제, 류렬, 김수경, 이근수, 90년대 천소영, 최남희, 2000년대 임병준에 의해서 동질론으로 반박되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에 2010년대 연구 결과는 잘 알지 못하여 그간 동질론을 반박한 최근 연구가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2000년도 논문 말미에도 80년대 이후로 고구려어 등 삼국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아 최근에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었다고 보긴 어려울 듯 하다) 중국 사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와 삼한의 언어가 동일 내지 비슷했다고 기록하며, 특히 "양서"에는 '신라의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뒤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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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의 얼굴 비교한국사랑/조선사 2019. 1. 8. 22:11
왼쪽 위부터 차례대로 태조 이성계, 익안대군 이방의(태조의 3남), 왼쪽 아래부터 효령대군 이보(태종의 2남), 수양대군 이유(세종의 2남).익안대군 영정에서 사모의 뿔이 네모난 것은 아마 후대에 이모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조선 초의 영정 티가 잘 난다. 익안대군 영정은 도난 당했다가 최근에 극적으로 되찾았다.효령대군 영정은 제작시기가 분명하지 않다. 대군답지 않게 익선관과 곤룡포를 연상케 하는 차림이 특이하다. 대군이 독실한 불자였던 탓일까 불화의 느낌마저 난다. 그럼에도 태조로부터 이어진 무인의 풍모가 분명하다. 효령대군으로부터 양녕대군과 세종, 태종의 생김새를 그려볼 수 있다. 양녕대군은 세자 시절 몰래 궁 밖으로 나가서 사고를 칠 때마다 자신을 가리켜 “효령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