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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의 언어는 같았는가 달랐는가?
    한국사랑 2019. 1. 30. 00:03

    삼국언어에 대해선 60년대 이기문, 김완진, 송민, 박병채 등의 연구로 각각 달랐다는 결론이 도출된 바 있었지만 80년대 김방한, 이병선, 김병제, 류렬, 김수경, 이근수, 90년대 천소영, 최남희, 2000년대 임병준에 의해서 동질론으로 반박되었다. 그런데 과문한 탓에 2010년대 연구 결과는 잘 알지 못하여 그간 동질론을 반박한 최근 연구가 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2000년도 논문 말미에도 80년대 이후로 고구려어 등 삼국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을 보아 최근에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었다고 보긴 어려울 듯 하다)

    중국 사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와 삼한의 언어가 동일 내지 비슷했다고 기록하며, 특히 "양서"에는 '신라의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뒤에야 중국과 통한다', 즉 백제인이 신라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통역을 해 주었음을 기록한다. 말갈 등 퉁구스 계와는 아예 '달랐다'라고 못박아 표현한 것과는 무척 대조된다.

    삼국의 언어가 달랐다고 주장하며, '고구려어'라는 개념을 만든 이기문조차 중세 국어로 이어지는 고구려 어휘가 44%가 된다고 보았고 박병채는 68%가 된다고 보았다. 이들 주장과 다르게 역설적으로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언어가 같은 근원에서 나온 말이라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언어의 계통을 파악하는 데에는 어휘만큼 중요한 것이 문법적 성격일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어 문법의 흔적이 중세 국어에도 나타나며 현대 국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어순과 조사에 있어서는.

    아울러 고구려의 천하관도 삼국어 동질론을 뒷받침한다. 광개토태왕비문에서 백제, 신라, 동부여와 왜, 후연에 각각 다른 표현을 쓰는 점이 주목된다(나는 영락 17년(407년)의 대상은 단연코 백제나 왜가 아닌 후연이라고 본다.) 백제, 신라, 동부여 등에 대해서는 토벌, 공취 등 비교적 온건한 표현이 쓰인 반면 왜와 후연에 대해서는 참살, 궤멸, 소탕 등 거친 표현이 쓰인다. 고구려 입장에서 백제, 한, 예에 대해서는 동질성을 갖고 있었던 근거가 되는 것이다(그렇다고 근대의 민족 개념으로 삼국을 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님. 단지 확연히 다른 종족과는 달리 뭔가의 동질성이 느껴졌을 거라는 얘기)

    그럼에도 속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삼국의 언어 자료가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교언어학에서 어족을 구분할 때 사용하는 기준인 신체어, 친족어, 수사 등의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달랐다고 해서 북경어-광둥어 만큼의 격차는 아니며 같았다고 해서 지금의 표준어 마냥 통일된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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