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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도의 균형 잡힌 영성
    교회사랑/한국교회사 2019. 2. 8. 18:30

    역시 그 해 1931년 가을이었다. 원동교회 집회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은 어느 가족의 눈물겨운 형편을 듣게 되었다. 김OO씨의 가족이 끼니를 굶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또 직접 보셨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다가 결국은 OO을 당했다. 그 가족이 살던 곳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마침내 OO를 떠나 한국에 건너와 경성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야박한 경성 인심은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조밥 몇 술도 얻어 먹지 못해 굶고 있었다. 이 소식을 목사님께서 듣게 된 것이다. 목사님이 그 집엘 찾아갔을 때도 대여섯 되는 식구들이 차가운 냉돌방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얼굴만 쳐다보며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없다. 다음에 있는 얘기는 그 후에 생긴 일이다.

    어느 날 오후 밖에서 들어오신 목사님께서 다시 급히 나가시려고 하셨다. 웬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어디 가시는지 저도 같이 갈까요?”했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는 “아니야, 혼자 얼른 갔다 올게”하시면서 나서려고 하셨다. 이런 때면 보통 “그럼 다녀오세요” 했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꼭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웬만하면 저도 데리고 가세요.”

    “왜 꼭 따라가겠다는 건지 모르겠네.”

    목사님께서 웃으시며 중얼거린다.

    “왜가 아니라 내가 가도 괜찮을 곳이면 목사님과 함께 좀 다녀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에요”하고 대답하며 따라나섰다.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걷던 목사님이 운니동에 이르더니 2X번지라는 문패가 붙은 대문 앞에 멈추어 서시고 문패를 살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시며 내게 말씀하신다.

    “저기 서 있는 저 양복 입은 청년이 형사지요.”

    하시더니 용기를 내시는 듯,

    “자, 들어가자고”하시며 대문을 들어선다.

    가족과 함께 방에 들어선 목사님은 가족에게 나를 소개하시더니 그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끝마치고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던 목사님께서 나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내 기도가 끝난 후 목사님께서는 하얀 봉투 하나를 김 씨의 미망인에게 건넸다.

    집을 나서서 거리를 걸으며 나에게 김 씨와 김 씨의 가족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가족이 경성에 온 것을 안 경찰서에서는 그 집에 출입하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항상 골목에 형사를 세워둔다는 것이었다. 그 위험하고 찾아가기 힘든 집을 목사님께서는 자주 찾아 다니셨다. 그 해 겨울, 목사님께 들어온 돈이나 물건은 거의 다 김 씨 가족에게 전달되곤 했다.

    변종호, “이용도 목사 전집 추모집” 55-56.

    **
    여기서 ‘김OO’은 백야 김좌진이다. 만주에서 암살 당한 후 김좌진의 가족은 조선으로 건너와 경성에 안착했지만 야박한 민심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고, 일제는 형사를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이 와중에 이용도 목사가 김좌진의 가족을 성심껏 돌보았던 것이다.

    이용도는 영성의 대가다. 그럼에도 그가 갖고 있던 영성이 헛된 영성이 아님은, 그 영성이 사회와 민족을 위해 아낌없이 쓰였기 때문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나누지 않는 영성은 썩은 영성과도 같다. 영성을 위한 영성은 사실 엉성한 영성일 뿐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정의를 향해 침묵하는 영성은 헛된 영성일 뿐이다.

    오늘날 영성 운운하는 사람치고 이용도만큼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김좌진의 가족이 김좌진 암살 전에 조선으로 왔고, 인촌 김성수의 도움으로 호구할 수 있었으며, 가족이라 해봤자 김좌진의 어머니와 본처 두 사람뿐이었던 것으로 그렸었다. 위 일기에 따르면 그 드라마는 고증을 잘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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