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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 1장 1절
    기독교 일반/창세기 강해 2020. 1. 15. 02:50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시작의 책이자 신명기까지 이어지는 다섯 권의 책을 시작하는 책이다. 창세기를 포함한 다섯 권의 책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하고, 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를 알려준다. 창세기는 이 다섯 권의 시작이다. 즉 창세기는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고, 어떤 모습을 갖췄는지를 말해준다. 즉 창세기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창조는 과거의 사실이지만 현재의 일이며 미래의 사실이기도 하다. 자꾸 창세기를 과거의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책이나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과학책으로만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창세기는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미래의 일까지 모두 말씀한다.

    창세기의 처음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야기한다. 창세기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에서 이 창조를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창조는 바로 타락으로 연결되며,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의 구속이 약속된다. 타락한 인간의 죄가 점점 증가하고 악랄해지며, 그 죄가 가득 차자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인류를 보존하시고 그 혈통으로부터 아브라함을 준비하셨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타락을 딛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시간이며,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재림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다. 그러나 이는 머나먼 미래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 일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우리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이며 미래인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또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길 원하시는지 창세기를 통해 배우기를 원한다.

    창세기는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포로 시작한다. 동시에 오경도 이 말씀으로 시작한다. 동시에 성경 또한 이 말씀으로 시작한다.

    1:1에 ‘태초에’라는 말이 나온다. 태초가 언제인가? 흔히 태초 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그 전에 무엇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진다. 그러나 ‘태초’라는 말은 시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이 말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이 말은 성경을 기계적이거나, 뭔가를 알기 위한 무미건조한 책으로 읽는 것을 거부하게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고 하는 말을 통해,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 존재의 의미가 시작되었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말씀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왜 우리가 사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에 우리가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근원이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고,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면 우리의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태초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시작된다는 것을.

    ‘태초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브뤠쉬트’라는 말이다. ‘처음’이라는 뜻의 뤠쉬트는 그런데 잠언에 나오는 지혜의 별명이다. ‘~에’라는 말로 쓰이는 ‘브’라는 말은 ‘~과 함께’라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지혜’와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다. 잠언 8:30에 나오는 말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혜’라는 말은 신약에서 ‘말씀(logos)’으로 번역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3. 말씀은 곧 예수다.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천지를 지으셨다. 그리고 나를 지은 그 예수가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신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태초에’라는 말을 원어적으로 들어가면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이 기록된 때를 알자. 성경은 처음부터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구두로 전승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성경을 암송한다. 우리나라 초창기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외웠다. 개역 성경은 외우기 쉽도록 운율이 있는 말로 되어 있다. 이렇게 암송되어 전해 내려오던 것이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시기는 포로기 때이다. 포로기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가 있는 70여년의 세월을 말한다.

    나라를 잃었을 뿐 아니라 강제로 고향에서 이주 당해 낯선 이국 땅에 포로로 잡혀와야 했던 유대인들은 말씀을 붙잡았다. 그리고 위기감을 느낀 그들은 구두로 전해내려오던 말씀을 문자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첫 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당당히 선포했다.

    포로기 이전에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오해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계시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이집트 나름대로의 신이 있고, 바벨론에도 바벨론 나름의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는 야웨가 하나님이었다. 시대가 이러니 자연스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계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가 하나님이 계신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신이 있는 땅에 왔으니 이들이 느낀 심정은 더욱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다. 하나님은 바벨론 땅에서도 당신이 계심을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내셨다. 에스겔이 그 중 하나이다. 에스겔의 첫 장을 보면 에스겔이 환상을 본다. 네 짐승이 나타나는데 각각 생김새가 사람, 송아지, 독수리 등등을 섞어놓은 특이한 형태이다. 그런데 바퀴가 있어서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적은 이유는, 하나님의 역동성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만 갇혀 있지 않으시고 모든 곳에 계심을 보여주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유대인들은 포로기라는 암울한 시간을 이겨내었다. 나라도 잃고 땅도 잃었지만 유대인들이 이를 극복해낸 것은 하나님에 대한 재발견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성경 첫 머리에 당당히 선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세계에서 제일 강하다. 아니, 유일한 신이다! 라는 고백. 이 고백이 있었기에 이들이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로 떠돌아 다녀도 당당할 수 있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래서 핍박의 상황에서도 이를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었어도 그리스도인들이 분연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독립 운동에 나섰던 것과 비슷하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기억하자. 창세기는 처음의 책이다. 시작의 책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삶을 기대하시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모습이자 현재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모습이며, 미래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모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심으로써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없이는 우리 삶은 헛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더 나아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왕이심을 기억하고, 또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그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며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 잃지 않기를 기도하자.

    특별히 오늘 하루를 위해 기도하자.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게 하시고,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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