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지셔츠인가 로만칼라인가

'클러지 셔츠(Clerical Shirts)' 또는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기본 흑색의 셔츠를 바탕으로 일반 와이셔츠에 착용하는 넥타이 대신 백색 칼라를 착용하는 형태의 셔츠를 말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옷을 부르는 이름은 '클러지 셔츠' 혹은 '성직자 셔츠', '로만 칼라' 등 다양하다. 이 중 '로만 칼라'를 제외하고 나머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셔츠를 입는 것이지 칼라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이 옷의 기원과 개선 주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함이다.

사실 옷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의복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천주교에서 흑색과 백색의 셔츠와 칼라가 각각 죽음과 순결을 상징한다고 보고, 개신교에서는 청빈을 의미한다고 보지만 이는 옷을 먼저 입은 후에 부여한 것뿐이다. 나쁘게 말하면, 짜맞추기일 뿐이다. 즉 청빈을 강조하기 위해, 죽음과 순결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옷을 입었다기 보단 그런 옷을 먼저 입고 적절한 의미를 붙인 것뿐이다.

도리어 기독교 성직자의 예복이 검은색이 된 것은 세탁 때문이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세탁은 고된 노동 중 하나였다. 검은색 제복은 때 탄 것을 감추고 세탁 횟수를 최대한 적게하기 위해 애용되었다. 가장 때가 자주 끼는 목에는 하양색 칼라를 둘렀다. 하양색 칼라는 탈부착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이 부분만 떼어내어 세척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17세기 즈음부터 오늘날 클러지셔츠의 원조격인 '밴드' 형식의 칼라가 부착된다. 흔히 웨슬리 초상화에서 웨슬리가 입고 있는 옷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목을 둘러 가슴팍에 두 갈래로 갈라지는 하얀 천조각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와 같은 복장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법관들을 비롯한 공무원들도 이 옷을 입었다. 목사들이 먼저 입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따라 했다기 보단, 목사 또한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옷을 입었다는 게 맞겠다. 그렇기에 흑색의 옷에 백색 칼라를 두르는 형태의 복식은 로마 가톨릭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존 웨슬리(1703-1791). 존 웨슬리가 착용하고 있는 칼라가 밴드 형식의 칼라이다. 이는 당대 서방 교회 내의 교파를 막론하고 두루 착용되던 형태의 의복이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입던 옷이었다.

19세기에 이르면 좀 더 간편한 형태의 클러지셔츠가 나온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인 도널드 맥러드(Donald Mcleod)가 오늘날의 형태와 근접한 형태의 칼라를 만든 것이다. 도널드는 가슴 위로 드러내던 밴드를 없애고 아마포로 목만 둘러싸는 칼라를 만들었다. 이를 20세기에 로마 가톨릭에서 개선했다. 도널드의 것은 셔츠를 입기 전 칼라를 착용하고 그 위에 셔츠를 입는 형태여서 칼라를 간편하게 탈부착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로마 가톨릭의 것은 그러나 먼저 셔츠를 입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칼라를 끼우는 형태여서 탈부착이 용이했다. 로마에 의해 개선되었기에, 이때부터 '로만 칼라'라는 별칭이 생겼다.

좌측. 도널드 맥러드(Donald Mcleod). 도널드가 입고 있는 옷이 오늘날의 클러지 셔츠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옷이다. 우측. 스웨덴 루터교 목사. 로마 가톨릭에 의해 간편하게 개선된 형태의 클러지 셔츠다. 출처: 위키백과.

요약하자면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클러지셔츠를 처음 만든 것은 감리교도 성공회도 천주교도 아닌 장로교였다. 이를 간편하게 개선한 것이 로마 가톨릭이며, 여기서 '로만 칼라'라는 이름이 나왔다. 즉 이 옷은 특정 교파의 전유물이 아니다.그런데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클러지셔츠가 로마 가톨릭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천주교나 개신교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천주교 신부님들이나 평신도들은 클러지셔츠를 입은 개신교 목회자를 보면 불쾌해 한다. 개신교회에서는 천주교의 것을 쓰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두 입장 모두 그릇되다. 전술했듯 옷에는 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