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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성경에 '없음'이 있는 이유
    성서학/신약학 2019. 1. 30. 23:29

    성경을 읽다보면 신약에 절을 가리키는 숫자는 있고 내용 대신 '없음'이라고 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통 '절 없음 현상'이라고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절 자체를 빼지 않은 채 내용만 없음이라고 처리한 점이다. 가령 16, 17, 18절에서 17절에 '없음' 표기가 돼 있다면 차라리 17절을 빼고 18절 이하를 17절 이하로 바꾸면 될텐데 17을 놔두고 '없음'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괜히 '없음'이라는 표기 때문에 처음 본 사람들은 당황하고, 의심을 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몇 가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첫째로 성경엔 원본이 없다.


    성경엔 원본이 없다. 그렇다. 바울이 로마서를 썼는데, 바울이 쓴 원본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원본 대신 원본을 배껴 쓴 '(필)사본'이라는 것만이 존재한다. 성경 시대에는 인쇄술이 거의 전무했다. 문서의 복제는 오로지 사람의 손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지금처럼 사진이나 컴퓨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목판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이 일일이 배껴 쓴 신약성서의 사본은 그 수가 무려 6천여 개에 달한다. 신약성서가 처음 기록된 1세기부터 서양에서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된 15세기 후반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배껴 쓴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사본은 속속 발굴되고 있고,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성경에 원본이 없고 무수한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절 없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첫번째 전제이다.


    둘째, 사본은 생성되는 과정에서 실수로 인한 첨삭이나 의도적인 첨삭이 발생한다.


    사람은 실수가 많다. 실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옮겨 적는 데에도 나타났다. 교회에서 성경 필사를 할 때 조금이라도 한 눈 팔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잘못 옮겨 적는 것을 경험한다.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6천여 개에 달하는 신약성서 사본들 중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처음과 끝이 100% 일치하는 사본은 단 한 개도 없을까. 필사자들은 실수로 앞서 쓴 부분을 중복 기술하기도 하고 빼먹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도 했으며 뒷 부분을 미리 당겨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는 의도가 없는 첨삭이지만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첨삭을 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누군가가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성경을 변개하기 위해 첨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의도적인 첨삭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루어졌다.


    1) 대상 사본의 실수를 교정하기 위해. 즉 잘못된 문법 등이나 오탈자 등을 바로 잡는 경우.


    2)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를 하는 경우(예: 사도행전 15장 34절. 실라의 알리바이를 해명하기 위해)


    여기서 2)가 중요한데, 절 없음 현상의 대부분이 2)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2)와 같은 경우로 인해 후대에 기록된 사본일수록 내용이 좀 더 많아진다. 2세기의 사본보다 12세기의 사본이 비교적 분량이 많다.


    셋째, 오늘날과 같은 성경의 장, 절 구분은 16세기에서나 나타났다.


    성경엔 처음부터 장과 절이 없었다. 장과 절은 사실 필사 시대에는 없어도 되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장과 절은 더욱 빠른 인쇄와 교정을 위해 필요했다. 이로써 1551년 스테파누스라는 사람이 출판한 헬라어 신약성서 제 4판부터 오늘날과 (똑) 같은 장, 절 구분이 생겼다. 스테파누스의 헬라어 신약성서 제 4판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서를 모체로 하였다. 문제는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성서를 발간하면서 보았던 사본들의 질이 매우 낮았던 데에 있다. 사본의 질을 가름하는 것은 첫째도 시기요 둘째도 시기이다. 4세기 사본과 12세기 사본이 있다면 당연히 4세기 사본의 질이 더욱 높다. 왜냐하면 4세기 사본이 원본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실수들과 의도적인 변개를 감안한다면 이른 시기에 기록된 사본이 후대 사본보다 그 가치가 월등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에라스무스가 참조한 사본은 12세기의 사본이었다. 당시는 본문비평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아무리 에라스무스라 하더라도 질 좋은 사본을 구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따랐다. 무엇보다 에라스무스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최초 헬라어 신약성서 출판자로서의 영예를 획득하고자 너무나도 졸속으로 일을 진행시켜 버린 것이다. 본래 헬라어 신약성서 출판을 준비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스페인의 신부 히메네스였다. 히메네스는 스페인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10여 년 전부터 원어로 된 성서 편찬을 시작했고 에라스무스가 나서기 전엔 이미 작업을 다 끝낸 상태였다. 출판을 위해 히메네스는 교황청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교황청의 승인은 나지 않았다. 히메네스가 하릴 없이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에라스무스는 히메네스가 10년에 걸쳐 한 일을 불과 6개월 만에 마쳐서 출판에 성공했고 결국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가 구한 사본들은 12세기의 사본들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요한계시록 끝부분(22:16-21)이 훼손된 상태였다. 에라스무스는 백방으로 끝부분도 구하려 애썼지만 실패하고, 라틴어 불가타 역에서 헬라어로 재번역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1514년에 출간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서는 루터비벨의 대본이 되었고, 큰 수정 없이 칼빈의 후계자 베자와 스테파누스에게 이어졌으며 베자 판을 토대로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이 나왔다.


    곧 절 구분이 최초로 등장한 스테파누스 신약성서 제 4판의 대본은 에라스무스본이었고, 그 대본은 12세기의 사본이었다. 12세기의 사본은 이른 시기의 사본에는 없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고, 장 절이 만들어질 때는 원본엔 없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킹 제임스 성경을 비롯한 수용본문(Textus Receptus, T.R.)의 시대는 성서비평이 본격화 된 19세기까지 이어졌다. 19세기에 이르러 본문비평이 발달하고, 이른 시기의 사본들이 등장하면서 어느 구절이 첨가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과 같은 TR 성경의 영향력은 건재했다. 본문비평으로 후대대의 첨가 구절로 확인된 구절이라 할지라도 절마저 함부로 빼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내용만 삭제한 후 '없음'으로 표기하고, 원래 있던 내용은 각주 처리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절 없음 현상에 깔려 있는 길고도 복잡한 사연이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있다. 바로 말씀보존학회이다. 말씀보존학회는 '성경침례교'라는 교단명('성서침례교'와는 다르다)을 사용하는 무리다. 말씀보존학회는 절이 없는 건 말도 안 되며 절을 빼버린 것은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분명 절 없음 현상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더 웃긴 것은 이들이 가장 정확무오한 성경이라 자찬하는 '한글 킹 제임스 성경'에도 오류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1611년에 발간된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옮긴 것에는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 제임스 성경'과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 두 종류가 있다. 그런데 번역의 정확성은 후자가 더 높다. 결국 말씀보존학회는 자신들이 그렇게 칭송하는 킹 제임스 성경을 제대로 번역해내지도 못한 것이다. 아무튼 신약성경의 절 없음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말씀보존학회 같은 문제 집단의 주장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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