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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31일 새벽예배 말씀
    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1. 31. 23:14

    본문: 창세기 13장 1-18절


    제목: 재물의 해악성과 아브람의 성숙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 땅으로 갔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 속이는 비열한 짓도 행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아브람은 아내를 잃을 뻔 하였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가 더럽혀지지 않고 무사히 아브람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화근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의 여동생이라고 알았던 바로가 사래를 후궁으로 삼으려 하면서 많은 결혼 지참금을 아브람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만 하더라도 결혼할 때 예단이니 혼수니 일일이 챙겨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당시 풍습에서 신부를 데려 가는 것은 한 집안의 인적 자원을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를 보충할 수 있게끔 지참금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2:16에는 바로가 아브람을 후대할 정도로 지참금을 많이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것이 밝혀진 뒤에도 그대로였습니다. 왜 그대로였을까? 왜 다시 빼앗지 않았을까? 상대가 왕이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왕인데 다시 돌려받는 건 속 좁은 행위로 인식되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진 아브람은 더 이상 애굽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1절, 아브람은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옵니다. 네겝은 가나안 땅 남쪽 지역입니다. 가나안 산지와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있는 광야의 중간 지대로 준 광야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 바로가 준 지참금이 그대로였기에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습니다. 빼앗겼던 아내 사래를 되찾았고, 결혼 지참금도 되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람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이득을 얻었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브람은 3절 네겝에서도 떠나 벧엘, 즉 자기가 전에 처음 거주했고 제단을 쌓았던 곳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5절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음이니라. 바로가 챙겨준 지참금 때문에 재산이 불었습니다. 이제 잘 살게 되었다, 부자가 되었다, 라고 할 타이밍에 문제가 생겼으니 바로 조카 롯과의 갈등이었습니다. 7절 땅이 비좁았기 때문에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12장에서 아브람이 행한 실수가 여전히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람의 애굽행은 사래를 겁탈 당할 뻔한 위기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바로로부터 받은 막대한 결혼 지참금은 조카 롯과의 갈등을 낳았습니다. 처음의 작은 잘못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많은 경우 아브람이 애굽에서 당했을 수도 있는 일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막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물질의 축복까지 주셨다고들 해석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바로로부터 막대한 지참금을 받은 것은 절대 복이 아닙니다. 이것이 진짜 복이었다면 물질로 인해 롯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일들이 일어났어야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돈이, 물질로 인해 피를 나눈 가족이 도리어 갈라지는 참담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물질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지금보다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행복까지 살 수 없습니다. 돈은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그래도 이 세상 살아가는 데 돈이 없으면 안 되지, 돈이 좀 더 많았으면, 하고 생각을 합니다. 맞습니다.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나 돈은 도구일 뿐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데 필요할 뿐이지 돈을 위해서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아브람과 롯의 사례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이 가족 관계를 갈라놓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기들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브람이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분가를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롯에게 제안하는 아브람이 모습에 변화가 감지됩니다.


    9절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놀랍게도 아브람은 조카인 롯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유교 문화권에 있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삼촌이 먼저 우선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브람이 살던 당시에도 풍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롯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이는 12장에서 아브람이 보여준 모습하고 매우 다릅니다. 12장에서 아브람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비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약속 대신 자신의 생각을 우선하였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아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에게 연속적으로 불행한 일이 닥쳐왔습니다. 13장에서 아브람은 이와 같은 고난을 겪고 뭔가 깨달은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한층 성숙한 믿음의 분량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믿음의 사람들이 성장해야 함을 아브람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우선권을 받은 롯은 그러나 안타까운 선택을 합니다. 롯은 아브람처럼 애굽에서 있었던 일을 반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되려 애굽 땅과 같이 기름진 곳을 찾습니다. 그 결과 찾아낸 지역이 바로 소돔 땅이었습니다. 소돔은 요단강이 사해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벧엘이 있는 곳보다 지대가 낮고 무엇보다 평지이며 물과 가까워서 물을 잘 이용할 수 있어 땅이 기름졌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롯은 가치 판단 기준을 물질과 풍요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브람에게 빼앗길라 얼른 떠나갑니다. 그러나 13절, 소돔 사람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을지 모르지만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큰 죄인이라는 말은 간음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을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을 가리웠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배설하는 것을 뜻합니다. 안다, 라고 하는 것은 성적 관계를 일컫는 말입니다. 큰 죄, 라고 하는 것은 간음했다라는 것입니다. 즉 소돔 사람들은 간음하는 사람들이었다, 성적인 부분에서 크게 타락한 사람들이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롯이 선택한 물질적 풍요의 종착점은 바로 타락에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결국 소돔을 멸망시키셨음을 압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길만 택하다가 멸망할 수도 있음을 성경은 롯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한 번 더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 경고에 귀를 기울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믿음의 덕을 보여주면서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한 아브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14절에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한 번 가나안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말씀하셨다는 것은 아브람의 관대함과 덕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뜻이며, 하나님 당신의 약속을 결코 바꾸시지 않으실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아브람은 하나님 나라를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나안은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원 받은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인가? 끝없이 나 자신을 소모하면서까지 욕심을 부리던 것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고 물질이 주인이 되어 그 아래에서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던 것에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욕심이 아니라 양보를 하고 갈등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택하겠습니까? 돈에 대한 문제.. 경제가 어려울 때 돈 욕심이 안 날라야 안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돈은 결코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끝없는 욕심으로 피폐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돈으로만 관계를 맺고 끊고 하면 그것보다 더 삭막한 게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과 롯을 통해 물질을 따르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주셨으며, 거기서 이탈한 아브람에게 얼마나 큰 복을 주시는지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장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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