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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2월 8일 새벽예배 말씀
    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2. 8. 14:29

    창세기 15:1-6

    15:1. ‘이후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언제나 앞장과 뒷장의 흐름을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은 장과 절로 연결되어 있지만 성경이 처음 쓰일 당시에는 이런 구분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구분이 있다 보니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장과 절을 너무 의식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처음 쓰일 땐 이런 장치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언제나 앞장과 뒷장이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후에’라는 말은 바로 앞의 14장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14장에서 아브람은 위기에 처한 롯을 구하고 강대국의 왕들을 무찔렀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양보를 한 대상인 롯이 처한 위기를 결코 좌시하지 않고 믿는 자의 아량을 보여준 훌륭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보인 아브람에게 멜기세덱이 찾아와 축복을 합니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믿음의 아량을 베푼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 일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은 지극히 뜻밖입니다. 2절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하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뜻밖의 반응을 한 것은 아브람의 상황이 그 일 후로도 변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아까도 말씀드린 믿음의 아량을 베풀고 그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때입니다. 아브람은 남들 보기에 정말 대단한 일을 해 내었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부터 축복을 받았지만 그의 현실적인 상황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자식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자식 없는 것이 큰 고통이지만 전근대적인 상황에서 그것은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거듭 말합니다.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이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브람은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하나님 앞에 반항적이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먼저 여기서 아브람의 행동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우리가 해내었고, 그로 인해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삶에 변화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가 이른 시간에 눈을 떠서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나와 있습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도 정작 우리 삶에 큰 변화가 감지된다거나 좋은 일만 일어난다거나, 내 나쁜 상황이 한 번에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배운 바로는 그럴 때도 그저 참고 군소리 하지 않는 게 믿는 이들의 도리이지만, 정작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의 행동은 그와는 멉니다.

    아브람은 이 문제를 직접 하나님 앞에 아룁니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다시 한 번 당신의 약속을 확인시켜주시고,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선택한 아브람에게 네 자손이 여기에 영원히 이를 것이며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고 하셨을 때 그 자손이 양자로 이어지는 자손이 아니라 혈육으로 이어지는 자손이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믿는 이로서의 도리를 다 했음에도 우리 상황이 영 나아지지 않을 때, 여러분 참지 마시기 바랍니다. 묵혀 두지 마시고 아브람처럼 하나님께 직접 아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겐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무엇을 그렇게 많이 맡겨놓았는지 달라는 것도 많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린 자녀의 심정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무분별한 요구는 믿음이 완숙한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브람을 보십시오. 아브람은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을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낌 없이 행했습니다. 아브람은 인내하고 또 인내했습니다. 이 일 후에, 라는 말은 14장의 일과 15장의 일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아브람은 그 긴 시간 동안에 계속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일해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참지 말라고 한 것은 즉 하나님 앞에 달라고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때로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믿음의 길을 평상시에 잘 걸어오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런 요구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에게 돌발적인 질문을 한 아브람에게 당신이 아브람에게 갖고 계신 약속을 재확인,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 후에 아브람을 밖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선 하늘의 별처럼 네 자손, 즉 네 혈육으로 이어지는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듣자 아브람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믿었다기 보다 아브람은 하나님 자체를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구절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러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우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그 일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우리 눈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그 일이 우리 눈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이루어 놓으신, 이루실 사실, 팩트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분은 이 팩트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이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근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분에 의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신 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분과는 상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일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인 반응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함을 믿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을 때 하나님이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란 여러 의미로 쓰입니다. 먼저 도덕적인 영역에서 도덕을 어기지 않는 일, 성경에서 금하는 일을 범하지 않는 행위로서의 ‘의’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행위, 라는 것이 ‘의’라는 말에 포함된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는 행위로서의 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의’의 또 다른 의미는 무죄 판결이라는 뜻입니다. 재판관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는 것, 즉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의입니다. 아브람이 의로 여겨질 만한 행동을 해서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을 신뢰하는 아브람을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셨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어떻게 보면 겨자씨만한 아주 작은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을 아브람을 인정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큰 일을 이루심을 의미합니다.

    이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은 행위로써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로 여겨졌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서 의로 여겨진 것은 곧 우리 또한 마찬가지인데, 곧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것, 입니다. 즉 우리가 이 말씀 중에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그 구원의 내용을 우리가 믿었으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여기셨다, 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늘 이 복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기억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하기에 때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솔직히 우리의 심정을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다시금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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