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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1일 새벽예배 말씀
    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2. 1. 12:24

    어제는 아브람과 롯이 물질 때문에 갈등하고 이를 아브람의 양보로 잘 마무리되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브람은 자기보다 아래인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고, 롯은 얌체처럼 좋은 땅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어제도 이야기했듯, 롯이 택한 소돔 땅은 풍요롭고 발달한 도시이긴 하였으나 하나님 앞에 악한 곳이었습니다.


    오늘은 롯이 택한 그 소돔 땅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그 주변 지역 4개의 도시 국가와 다른 왕들의 전쟁이 그것입니다.


    1절은 당시에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가장 확실한 지명은 시날, 인데 이곳은 바벨론 곧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합니다. 나머지 지역은 분명치 않으나 가나안보다 북쪽에 위치한 강대국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맞서 싸운 다섯 개의 왕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사해 인근에 있는 소규모 도시 국가들이었습니다. 이 다섯 국가가 큰 나라를 섬기다가 배반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 간의 전쟁이니 큰 나라가 이길 확률이 컸습니다. 확률대로 이긴 것은 강대국들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진 다섯 개의 소국 왕들은 모든 재물과 양식, 사람들까지 빼앗겼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롯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소식, 그리고 결과가 아브람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니 우리가 아브람의 입장이라면, 내가 아브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이 녀석이 자기가 먼저 좋은 땅으로 가더니 결국 저리 되는구만. 쯧쯧. 물질만 따라 가더니 결국 저렇게 되었구만. 이렇게 롯을 판단하고 정죄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강대국의 왕들인 만큼 함부로 행동에 나서는 일은 삼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13장에서 자기 유익을 내려놓고 겸손한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아브람은 14장에서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람은 롯이 처한 일을 듣고는 즉각 행동에 나섰습니다. 아브람은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사람을 데리고 당당히 강대국의 왕들과 싸워 이긴 후에 롯을 구해 내었습니다. 아브람은 자기를 버리고 좋은 땅으로 간 롯을 끝까지 생각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13장의 말씀으로도 충분히 믿음의 성숙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선권을 조카에게 넘기고 좋은 땅을 찾아간 롯과 달리 자신은 척박한 가나안 땅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니 배가 아플만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이 당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롯을 구출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가 우리가 범할 수 있는 또 다른 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다 줍니다. 죄는 집요하고 우리 머리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한 단계를 통과하면 그것으로 끝났다고 만족하는 순간 다시 죄와의 싸움에서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가 물질이라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며,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기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될 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 아직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신뢰하지 못하며, 따르려 하지 않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또 다른 테스트를 우리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아직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이들마저도 품어주기를 바라십니다. 아브람이 아직 철없이 물질과 풍요를 따르다가 스스로 화를 좌초한 롯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이만큼 성숙했어, 내 믿음은 이 정도야, 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 정말 믿음이 자란 사람들은 그런 얄팍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해집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이른 나이에 보통 그 나이대에 겪지 않는 일,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었습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만났고 주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아직 제가 겪은 고난을 겪지 않고,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한때는 제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교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을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고생했다, 산전수전 겪었을 때도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경험했을 뿐, 그것을 통해 나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더더욱.


    아브람은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단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318명이라는 적은 수의 병력으로 감히 강대국의 왕들과 싸워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수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신 분이 아니기에, 우리의 시각에서 당연히 아브람이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아브람이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혼자가 아니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셨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 아브람에게 함께 하시는데, 여기서 특별히 아브람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318명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브람이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쉽지 않은 전쟁을 해 내었습니다. 확률상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전쟁에 자신들을 내보낸 아브람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브람의 뜻을 따라, 어려운 전쟁을 수행하여 결국 승리하여 돌아왔습니다.


    이 싸움은 아브람 혼자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치르는 영적 전투는 우리 혼자만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이 신앙생활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신 이유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요,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뤄나가길 하나님이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318명의 사람들이 아브람과 함께 자라난 아브람과 같은 세대가 아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318명은 아브람과 친구처럼 자라난 이들이 아니라 아브람이 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아브람의 다음 세대들이었다. 아브람은 이들을 기르고 훈련시켰습니다.


    바로 믿음의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낳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길러야 한다. 훈련시켜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자신을 통해 누군가를 길러내지 않았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브람이 318명을 기르고 훈련시켰다는 것은 우리가 기르고 양육하며 잘 훈련하여 영적 전투에서 같이 싸울 사람들을 길러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가 사람을 키우지 않습니다. 특히 사역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역자들은 돈을 주고 적당히 혹은 과하게 부려 먹는 직원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그저 일로만 대하며 이해 관계로서 만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신학생들이 교회 사역을 하다가 마음이 빈곤해져 사역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러한 처절한 환경에서 이겨내더라도 그 자신이 마음이 가난하고 메마른 사람이 되어 또 다른 누군가를 망치게 됩니다.


    신학생과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교인들끼리도 그렇습니다. 교인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지 맙시다. 이동이 빈번한 현대의 교회일수록 이런 경향이 많을 것입니다. 어차피 이사를 가게 되면 떠나서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니까 적당히 선을 긋고 말자, 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특히 젊은이들의 영혼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믿음이 연약한 이를 판단하지 맙시다. 그들이 연약함으로 당하는 고통을 고소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가 믿음이 더 크다면 아량을 보입시다. 위기가 처한 이들을 구해주고, 사랑으로 품읍시다. 아울러 이 일은 우리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키우고 훈련시킬 때 가능한 일임을 알고 교회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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