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일반
-
2019년 2월 8일 새벽예배 말씀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2. 8. 14:29
창세기 15:1-6 15:1. ‘이후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언제나 앞장과 뒷장의 흐름을 생각해보아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은 장과 절로 연결되어 있지만 성경이 처음 쓰일 당시에는 이런 구분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구분이 있다 보니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장과 절을 너무 의식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처음 쓰일 땐 이런 장치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언제나 앞장과 뒷장이 연결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후에’라는 말은 바로 앞의 14장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14장에서 아브람은 위기에 처한 롯을 구하고 강대국의 왕들을 무찔렀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양보를 한 대상인 롯이 처한 위기를 결코 좌시하지 않고 믿는 자의 아량을 보여준 훌륭한 행동이었습니..
-
성찬을 자주 시행해야 하는 이유기독교 일반 2019. 2. 2. 12:49
최근 지인으로부터 성찬을 ‘자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았었다.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1. 우리말 성찬제정사의 번역 문제 대부분 개신교회에서 고전 11:24을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로 번역한다. 하지만 원문에서는 ‘행하다(ποιεω)’가 주동사로, 현재 능동태 2인칭 복수 명령법으로 활용되어 있다. 따라서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가 옳은 번역이다. (헬: τοῦτο ποιεῖτε εἰς τὴν ἐμὴν ἀνάμνησιν, 영: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 ‘기념하라’든 ‘행하라’든 그게 그거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뉘앙스가 아니라 번역의 정확성 문제다. 2. 헬라어에서 현재 명령법은 반복적인 동작을 나타냄 헬라어 명령법에는 독특하게..
-
2월 1일 새벽예배 말씀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2. 1. 12:24
어제는 아브람과 롯이 물질 때문에 갈등하고 이를 아브람의 양보로 잘 마무리되었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브람은 자기보다 아래인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고, 롯은 얌체처럼 좋은 땅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어제도 이야기했듯, 롯이 택한 소돔 땅은 풍요롭고 발달한 도시이긴 하였으나 하나님 앞에 악한 곳이었습니다. 오늘은 롯이 택한 그 소돔 땅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그 주변 지역 4개의 도시 국가와 다른 왕들의 전쟁이 그것입니다. 1절은 당시에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가장 확실한 지명은 시날, 인데 이곳은 바벨론 곧 지금의 이라크 지역을 의미합니다. 나머지 지역은 분명치 않으나 가나안보다 북쪽에 위치한 강대국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
-
1월 31일 새벽예배 말씀기독교 일반/설교, 묵상 나눔 2019. 1. 31. 23:14
본문: 창세기 13장 1-18절 제목: 재물의 해악성과 아브람의 성숙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 땅으로 갔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 속이는 비열한 짓도 행했습니다. 애굽 땅에서 아브람은 아내를 잃을 뻔 하였지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아내가 더럽혀지지 않고 무사히 아브람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화근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의 여동생이라고 알았던 바로가 사래를 후궁으로 삼으려 하면서 많은 결혼 지참금을 아브람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만 하더라도 결혼할 때 예단이니 혼수니 일일이 챙겨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당시 풍습에서 신부를 데려 가는 것은 한 집안의..
-
클러지셔츠인가 로만칼라인가기독교 일반/기독교 복식 2019. 1. 30. 22:46
'클러지 셔츠(Clerical Shirts)' 또는 '로만 칼라(Roman Collar)'는 기본 흑색의 셔츠를 바탕으로 일반 와이셔츠에 착용하는 넥타이 대신 백색 칼라를 착용하는 형태의 셔츠를 말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옷을 부르는 이름은 '클러지 셔츠' 혹은 '성직자 셔츠', '로만 칼라' 등 다양하다. 이 중 '로만 칼라'를 제외하고 나머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 셔츠를 입는 것이지 칼라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이 옷의 기원과 개선 주체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함이다. 사실 옷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의복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천주교에서 흑색과 백색의 셔츠와 칼라가 각각 죽음과 순결을 상징한다고 보고, 개신교에서는 청빈을 의미한다고 보지만 이는 옷을 먼저 입은 후에 부여한 것뿐..